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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면접 읽기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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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만/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로 와서
전파가 되었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준 것처럼
누가 와서 나의
굳어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속 버튼을
눌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전파가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사랑이 되고 싶다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는
라디오가 되고 싶다
위에 인용한 시는 장정일 시인의 <꽃의 패러디>이다. 이 시가 의미하는 깊은 뜻이 무언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면 어떤가. 이 시를 음미하면서 엉뚱하게도 누군가가 보고 싶을 때 그 사람이 단추만 누르면 살아나 내게 다가오는 라디오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다.
단추만 누르는 정도의 노력만 기울이면 우리에게 쉽게 다가서는 것? 그게 바로 대중문화다. 괜히 어렵게 이야기할 것 없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나 탤런트는 라디오나 TV의 단추만 누르면 나타난다. 어찌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영화관이나 공연장을 찾는 건 단추를 누르는 것보다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것 역시 공부를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아니다.
대중문화의 범주에 속하는 라디오, TV, 영화, 비디오, 잡지, 만화, 전자오락 등의 내용물을 즐기는 일은 공부를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것들을 즐기기 위해선 깊은 생각을 하기 위해 이마를 찡그려야 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저 그 앞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모든 것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온다.
우리가 대충 이해하고 있는 대중문화는 그 정도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이 바로 대중문화다. 그런데 세상을 늘 즐기면서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리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다. 공부가 그렇고 일이 그렇다. 그래서 어른들은 자식이 대중문화에 깊이 빠져드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어느 가정에서든 그런 문제를 놓고 부모와 자식간에 말다툼을 한번쯤은 벌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논쟁은 비단 가정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대중문화가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논쟁을 벌여 왔다. 이제 그 논쟁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대중문화의 뿌리를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우선 문화라는 말의 의미부터 짚고 넘어가자. 영어에서 문화(culture)라는 단어는 토양이나 식물을 경작(cultivation)한다는 데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는 나중에 ‘마음의 경작’이라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문화는 흔히 “지식, 신념, 예술, 도덕, 법 그리고 그밖에 사회의 성원으로서의 인간에 의해 획득된 능력과 습관 등을 포함하는 모든 것”으로 정의되어 왔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의 문화는 흔히 예술을 가리키는 것이었으며, 이는 소수의 귀족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보통사람들도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권리가 신장되면서 문화 활동에 참여하게 되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보통사람들이 참여하기 이전의 문화 활동은 귀족들이 주는 돈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므로 예술가들은 귀족들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족했다. 귀족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고 그들의 문화적 취향은 비슷했으므로, 예술가들은 비교적 자신이 원하는 대로의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 활동은 경제적으로 관객의 입장료에 의존했기 때문에, 늘 보다 많은 관객을 끌어 들여야 할 필요성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른바 ‘시장 논리’의 지배를 점차 받게 된 것이다. 보다 많은 관객을 불러 모으기 위해서는 예술적 수준이 낮은 사람의 취향도 만족시켜야 했으므로 이는 불가피하게 예술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그러한 보통사람들을 가리켜 흔히 ‘대중’이라고 부른다. 대중은 모든 신분의 사람을 포괄하며, 각 개인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고, 그 성원은 서로 고립되어 상호작용이 없고 사회 조직성을 갖고 있지 않는 것으로 정의되어 왔다.
19세기 초 유럽의 귀족과 지식인들은 적어도 프랑스혁명(1789~1794) 이후 그러한 대중이 정치무대에까지 등장해서 지배계급으로 점차 변모해감으로써 구제도가 붕괴하고 전통적 가치마저 파괴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심을 갖고 있었다.
1850년대의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미 보통사람들로 구성된 중산계급이 별다른 무리 없이 사회에서 그들의 지배적 위치를 확립하게 되었다. 그러한 사회를 가리켜 ‘대중사회’라고 하는데, 이 대중사회에선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대중매체의 위력이 날로 점증하고 있었다.
대중매체의 기본원칙은 대중신문이 출현하고 널리 보급된 19세기 말경에 이미 확정되었는데, 그 원칙이란 전체 수용자의 수를 보다 더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 맞추어 매체의 내용을 꾸며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중의 존재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느꼈던 19세기의 귀족과 지식인들은 그러한 새로운 유형의 문화가 진실한 예술의 아름다움과 존엄성을 해치는 ‘저급문화’라는 이유로 혹독한 비판을 가하였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대중문화는 흔히 저급문화로 표현되고, 대중이 아닌 소수의 엘리트를 위한 문화는 ‘고급문화’로 불리게 되었다.
반면 20세기의 대중문화 비판론자들은 대중문화의 상업적 타락에 대해 경계심을 나타냈다. 그들은 대중문화가 영리 추구를 위해 조직된 기업에 의해 이루어지며, 그로 인해 대중에게 영합하는 동질적이고 규격화된 제품만이 양산될 뿐이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대중문화 비판자들 가운데에서도 특히 좌파적 입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대중문화가 대중의 ‘정치로부터의 도피’를 부추기고 기존의 불평등한 사회 체제를 정당화시킨다는 비판을 가하였다. 그러한 시각에 따르면, 대중문화는 노동계급의 수동성과 무관심을 조장하는 자본주의의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단호히 거부해야 할 ‘아편’과도 같은 것이었다. (중략)
대중문화의 속성을 어떻게 보든, 오늘날의 대중문화 논쟁은 과거와는 다소 다른 성격을 갖게 되었다. 똑같은 이름으로 불릴망정 TV가 출현하기 이전의 대중문화와 이후의 대중문화는 큰 차이를 갖고 있다. 게다가 뉴 미디어의 발달은 이른바 ‘매체폭발’을 일으키고 있어, 현대인은 오늘날의 대중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대중매체를 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대중문화를 ‘대중매체의 문화’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대중문화의 여러 특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점은 그것이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논리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공산주의 국가에도 대중문화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적어도 그 규모와 영향력에 있어서 자본주의 국가의 대중문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보잘것없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가 본격적인 개방을 하면서 밀어닥친 가장 크고 가시적인 변화가 바로 미국 대중문화의 범람이었다는 것을 보더라도 분명하다.
대중문화는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소비자의 호주머니를 겨냥해서 만들어지는 문화이다. 그것도 보다 많은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용의주도한 마케팅 기법이 따라 붙는 문화이다. 그것이 꼭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어느 가수가 10대 여학생들이 많이 사줄 것을 기대하고 그들의 취향에 맞게 음반을 만들었다 해도, 그 음반을 산 여학생들이 지불한 돈에 상응하거나 그 이상의 만족을 얻는다면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다만 문제는 대중문화를 이용하고 받아들이는 수용자들이 늘 현명한 건 아니며 대중문화 상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 점을 노릴 때가 많다는 데에 있다. 수용자들이 현명하다면 퇴폐적인 저질 대중문화 상품이 큰 인기를 얻지 못해야 마땅하겠건만, 현실은 꼭 그렇지는 않다. 따라서 대중문화는 그 생산자들의 건전한 양식과 수용자들의 올바른 자세가 갖추어질 때에 비로소 우리 사회에 매우 유익한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강준만, 「대중문화의 겉과 속」에서

